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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7일 일요일

상주 남장사 [南長寺]

곶감으로 유명한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남장사도 천년고찰이다. 832년 신라 흥덕왕 7년 진감국사가 창건하여 장백사라 하였다. 이런 내용은 최치원이 지었다는 경남 하동의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 비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1186년 명종 16년 각원이 지금의 터로 이전하여 남장사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1203년 신종 6년 금당을 신축하고 1473년 성종 4년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35년 인조 13년 정수가 금당을 중창하였다. 1621년 광해군 13년 명해가 영산전을 신축하고, 1704년 숙종 30년 진영각을 신축, 1709년 민세가 영산전을 중수하고, 1761년 영조 37년 상로전을 신축, 1807년 순조 7년 중수했다.
















상주의 노음산에 위치한 남장사는 고려 때까지 번성하다가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그 세가 쇠하고, 후 선교 양종 통합을 실현한 서산대사의 수제자 사명대사가 남장사의 보광전에서 수련하면서 선교 통합의 도량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던 남장사는 1635년 중창했으나 이후 여러 차례 복원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보존되어 왔다. 남장사의 가람 배치는 크게 두 개로 나뉘는데, 일주문 앞에 있는 극락보전 영역과 그 위에 있는 보광전 영역으로 구분된다. 두 구역은 낮은 언덕을 단으로 분리해 놓고 각각의 단에 전각을 지었다.
















현재 남장사의 극락보전과 보광전은 모두 화재로 소실되어 최근에 다시 지은 목조건물이다. 때문에 특별한 문화재가 남아 있지 않지만 그래도 천년고찰 남장사의 분위기만큼은 천년 전 그대로인 것만 같다. 주차장에서 한참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남장사는 가을이면 지역 특산물 곶감 말리는 일로 바쁜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야 한다. 이 길을 따라 집집마다 감나무가 가득하고, 여기서 딴 감을 건조대에 걸고 말리느라 정신이 없는데 감나무가 가득한 마을도 보기 좋은 풍경이다.
















남장사 주변에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주목받는 사찰도 오래된 문화유산도 아니어서 찾는 이가 많지 않아 보인다. 한적하기만 한 남장사는 호젓하게 산책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딱 어울리는 절집이다. 너무 유명해 북적대는 사람들을 따라다녀야 하는 관광지에 온 것 같은 분위기의 절집이 싫다면, 이렇게 호젓한 산사를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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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상원사 [上院寺]

오대산 산중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상원사는 현재 행정구역으로 평창군 진부면에 속한다. 인근 월정사의 말사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문수보살상을 모시는 문수도량인 상원사는 인근의 적멸보궁과 함께 불교 성지의 하나로 유명한 곳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월정사에서부터 비포장길로 한 시간 가량을 달려야 올 수 있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이 길이 말끔하게 포장되어 상원사 앞까지 평창 읍내에서 시내버스가 다니고 있다.
















상원사 역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천년고찰이다. 신라 성덕왕 4(705) 지금의 상원사 터에 진여원을 창건하고 문수보살상을 봉안하였다 한다. 이것이 상원사의 시작이고, 이후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쳤으며, 조선 7대 임금인 세조가 이곳에서 기도하면서 문수보살을 만나 피부병을 고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남아 있다. 이때 세조가 친히 권선문을 작성하여 진여원을 확장하고 상원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6·25 사변 때는 방한암 스님이 전쟁의 참화에서 상원사를 지켜냈고, 30년간 기거하시다가 1951년 이곳에서 입적하셨다.
















잘 포장되어 있는 도로변 버스정류장 앞에는 세조가 목욕할 때 의관을 걸어 놓았다는 버섯 모양의 관대걸이가 남아 있고, 여기서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급한 경사의 계단을 100~200m 오르면 경내에 오르게 된다. 거의 오대산 정상에 가까운 위치라 사방은 온통 오대산 산봉우리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답답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겨울에 눈이 내려 모든 산봉우리가 설국으로 변하면 장관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등지고 서 있던 전각들 앞쪽에 전시되어 있는 동종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상원사 사찰 자체보다 더 유명한 상원사 동종의 모형이다. 상원사 동종은 국보 제36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에 주조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경주 국립박물관의 성덕대왕신종보다 45년 더 앞선 신라 성덕왕 24년에 만들어져, 조선 예종 원년(1469) 상원사로 이전해 왔다 한다. 상원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는 분이더라도, 상원사 동종에 대해서는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한 번쯤 암기해 보았을 것이다.
















오대산 비로봉 바로 아래 자리 잡은 상원사는 적멸보궁에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기에 대웅전을 따로 두지 않고, 대신 영산전을 두고 있다. 산꼭대기에 있어 햇볕이 잘 드는 상원사의 부도밭은 다른 사찰의 부도밭과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영산전 끄트머리에는 경내 분위기를 크게 해치지 않고 기념품 판매점과 편의시설이 자리 잡고 있는데, 너와지붕을 얹어 강원도 냄새를 짙게 풍기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오래된 문화유적에 편의시설을 세우더라도 이런 배려를 한다면, 전체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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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관음사 [觀音寺]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절다운 절집인 관음사는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의 본산이다. 즉 제주도 내 모든 사찰을 관장하는 절집이다. 일반적으로 전국의 명산에는 유명한 사찰들이 몇 개씩 자리를 잡기 마련인데, 제주도가 섬 지역인 까닭에 관음사가 한라산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절집이기도 하다. 창건자와 창건 연대는 기록이 없어 미상이며, 조선 숙종 때 제주목사였던 이형상이 제주의 잡신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관음사를 폐사시킨 이후 폐허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관음사는 1912년 비구니 봉려관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으나 관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나게 되자, 이곳에 절을 짓고 불상을 모신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후 1948년 제주 4·3 사건으로 다시 전소되었다가 1968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역사 때문에 육지의 수많은 천년고찰들과는 분위기부터 사뭇 다르다. 우선 입구부터 제주도 특유의 풍경이 펼쳐진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다른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금강문이나 사천왕문이 없다. 대신 100여 미터의 경사로를 따라 제주 현무암으로 조각한 크기가 같은 불상들이 도열해 있다. 아마도 이 불상들이 사천왕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길을 걸어 경내에 들어서면 정면에 대웅전과 몇 개의 전각이 서 있는데, 모든 건물이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것들이어서 관음사의 길지 않은 역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소박한 풍경도 제주도라는 특수한 지역에서 만나는 절집다운 절집이라 거북하지 않다. 대웅전을 마주하고 제법 규모가 큰 연못이 하나 조성되어 있고, 그 왼쪽으로 거대한 불상이 야외에 세워져 있다. 이것도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절집에 어울리지 않는 규모이지만, 지역에서 관음사의 위세를 가늠하기에 좋은 불사의 흔적인 것 같다.
















관음사 오는 길에는 국립제주대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제주도 최대 규모의 국립대학으로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제주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이다. 제주대학교에는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본관 건물이 있었다. 대학 시절 제주도에 와서 실제로 건물을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헐리고 없었다. 어디로 이전한 것인지는 모르나, 한국 건축사에 아주 중요한 건물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처럼 사라진 문화유산의 존재는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다. 관음사도 오래도록 같은 자리를 지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이곳을 찾는 이들 앞에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다면, 제주도 유일의 절집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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