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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6일 화요일

경주 불국사 [佛國寺]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손가락에 뽑을 수 있는 사찰 불국사. 대한민국 불교 사찰 하면 수학여행을 통해 누구나 한 번쯤 가본 적이 있는 절집이 불국사이다. 그런데 불국사는 왜 유명한 걸까? 이번에 불국사를 찾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첫 번째 질문이다. 그리고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그런 의문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한 번에 깨지고 말았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대학 다닐 때까지 정말 여러 번 찾아왔던 불국사지만, 매번 느끼는 감탄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고 말았다.

우선 불국사는 우리나라의 여느 사찰들과는 달리 주변 지역이 정말 체계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인근 지역에 들어서 있는 불국사 관광단지를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이 청운교·백운교다. 종교를 떠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최고의 석조 건축물이자, 1,000년 전 신라시대 문화의 향기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너무나도 아름다운 석조 구조물이다. 경사진 산자락의 사찰 본당을 오르는 구조물을 이리도 아름답게 만들어 놓은 신라인들의 문화적 역량에 찬사를 금할 수 없을 따름이다.

지금은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청운교·백운교를 직접 걸어 볼 수는 없다. 대신 산비탈을 따라 경내를 출입하는 동선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으며, 이 동선을 따라 경내에 들어서면 다시 한번 숨 막히는 풍경과 맞닥뜨리게 된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불탑들이 국토 전체에 산재한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석탑 2개가 시선을 가로막고 서서, 방금 전 감탄하던 청운교·백운교의 감동을 모두 잊게 만들어 버린다. 국보 제20호 다보탑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국보 제21호 석가탑의 미려한 아름다움은 오묘하게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이 경건한 불심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더군다나 석가탑에서 1966년 발견된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본으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과 함께 우리 민족의 우수한 인쇄 기술을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기록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1,000년 동안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품고 그 긴 세월을 지나온 불국사 석가탑 앞에 서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한 번쯤 돌이켜 보게 되는 것만 같다.

불국사는 비교적 정확하고 상세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있는 "불국사고금창기"라는 기록물이 현존하고 있다. "불국사고금창기"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15 528년 처음으로 창건되어 신라 신문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해 대규모 중창불사가 이루어졌으며, 이후 여러 차례의 개보수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큰 절이지만 과거에는 더 큰 규모였다니 그때의 모습은 어떠했을지 궁금해진다.

불국사가 자리 잡은 토함산의 정상에는 또 하나의 위대한 민족유산이 남겨져 있는데, 우리가 흔히 석굴암이라고 부르는 국보 제24호 석불사 석굴이다. 불국사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절대로 놓칠 수 없는 문화재가 석굴암인데, 토함산 정상에 올라 석굴암의 본존불을 참배하는 것 또한 불국사 탐방에 아주 중요한 코스 중 하나이다. 너무 유명하고 엄청난 문화재가 즐비해서 이를 설명하다 보면 개인적인 감상과 느낌을 나열할 여유를 찾을 수 없으나, 이런 멋진 문화유산을 만나는 것은 매번 반복해도 이대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즐거운 일이라 생각한다.

 


































[국보] 석사탑/다보탑


대중교통으로 불국사가는 길 :
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
서울역에서 KTX를 이용하여 경주역까지 이동 경주역에서 버스나 택시로 1시간안에 이동할 수 있다.

Getting to Bulguksa Temple by Public Transportation: 
385, Bulguk-ro, Gyeongju-si, Gyeongsangbuk-do, Republic of Korea 
Take the KTX from Seoul Station to Gyeongju Station. From Gyeongju Station, Bulguksa can be reached within an hour by local bus or ta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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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華嚴寺]

우리 역사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조선 왕조가 유교 국가였던 탓에, 이전부터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삶에 깊이 영향을 미쳤던 불교는 주로 산중 깊숙한 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유명한 명산에는 유독 명찰들이 많이 있다. 지리산은 백두대간의 가장 남쪽에 자리 잡은 민족의 명산이고, 지리산 주변에는 수많은 사찰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지리산 주변의 수많은 사찰 중 단연 으뜸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화엄사를 첫손가락에 올릴 수 있다.

전남 구례군에서 시내버스가 수시로 다니고 택시로도 쉽게 이동이 가능한 지리산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인 544년에 인도 스님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불교의 화엄사상을 백제에 꽃피우게 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개보수를 거쳐 승승장구하다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조직하여 항전한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왜장 가토 기요마사에 의해 전소되었다. 이후 인조 때 백암 선사와 숙종 때 계파 선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이 시기에 국내 최대 규모의 각황전이 건립되고 선교 양종의 대가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특히 국보 제67호 화엄사 각황전은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대형 목조건축물이다. 수덕사 대웅전과 금산사 미륵전을 능가하는 규모의 초대형 목조건축물인 각황전은, 조선 숙종 때 건립되어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는 보기 드문 문화유산이다. 팔작지붕 다포집으로 정면 7, 측면 5칸의 각황전은 3층 장육전이 있던 자리에 계파 선사가 중건한 건축물로, 숙종이 직접 이름을 지어 현판을 내리고 사액하여 오늘날의 각황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각황전 앞에 서면 그 규모를 떠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웅장하고 장중한 아름다움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각황전 앞 석등 또한 유난히 크고 장중해 보이는데, 이 또한 국보 제12호란다. 이쯤 되면 이 자리가 보통 자리가 아니구나 싶어진다. 그렇게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고 여기저기를 헤매다 보면, 멀리 지리산 아랫동네의 전경이 어렴풋하게 들어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각황전 뒤편으로 안내 표지를 따라 뒷산을 오르면 산 중턱에 국보 제35호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이 자리 잡고 있는데, 삼층석탑을 떠받치고 있는 네 마리의 석조 사자상이 더없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석탑과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지리산 화엄사는 지리산을 대표하는 절집으로, 다양한 목조건축물과 석조건축물들이 유난히도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는 사찰이다. 서울을 제외하면 지방에 20개도 되지 않는 국보급 목조건축물을 보유하였을 뿐 아니라, 위치와 역사, 규모 모두에서 우리나라 불교 사찰을 대표할 만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문화유산이다.



































[국보] 화엄사 각황전



대중교통으로 화엄사가는 길 :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서울 용산역에서 전라선 KTX를 이용하여 구례구역까지 이동하고 구례구역에서 버스나 택시로 송광사까지 30분안에 이동할 수 있다. 

Getting to Hwaeomsa Temple by Public Transportation: 
137, Hwaeomsa-ro, Masan-myeon, Gurye-gun, Jeollanam-do, Republic of Korea.
Take the Jeolla Line KTX from Yongsan Station in Seoul to Gurye-gu Station. From Gurye-gu Station, Hwaeomsa can be reached in about 30 minutes by local bus or ta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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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4일 일요일

순천 송광사 [松廣寺]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불교의 종파도 참 여러 번 바뀌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생 때는 이런 불교의 종파를 암기하는 게 어려워 애써 모른 척했던 기억이 나곤 한다. 현재 우리나라 불교의 종파는 조계종이다. 그리고 조계종의 총본산이 되는 사찰이 송광사이다. 또한 한국불교의 삼보 사찰 중 승보사찰에 해당하는 절집이기도 하다. 그 이름과 위치만으로도 대충 짐작이 되는 송광사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송광사의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진입하려면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을 건너야 하는데, 자연 그대로의 하천을 살려두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이를 건너게 만들어 놓은 가람 배치가 초입부터 기대감을 충분히 증폭시켰다. 그렇게 경내에 들어서면 처음 맞이하는 건물이 대웅전인데, 이는 최근 화재로 소실된 것을 새롭게 지어 올린 것으로 한눈에도 규모만 화려할 뿐 별다른 깊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눈앞을 가로막은 대웅전을 피해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지난번 방문 때 미처 알지 못해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한 문화재를 찾기 시작했다.

대웅전을 사찰의 중심에 두고 주변부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전각들 중에서, 내가 찾는 국보 제56호 국사전은 어떤 건물일까.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드디어 범상치 않은 건물의 처마가 시선에 걸려들었고, 이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송광사와 더불어 나라를 빛낸 16국사의 영정을 봉안한 국사전은 정면 4,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조선시대에 지어져 지금까지 현존하는 송광사의 대표적인 목조문화재이다.

그런 중요성 때문일까, 송광사 국사전은 매일 공개하는 것이 아니다. 경내에서 지붕의 끄트머리는 보이지만 출입문은 일반 관람객 출입금지 구역 안에 있어, 많은 관람객들이 놓치기 쉬운 곳이다. 과거 송광사를 찾았을 때는 그 지붕 끄트머리만 올려다보며 저건 뭐지 싶으면서도 별다른 의욕 없이 돌아섰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번 방문은 송광사 국사전을 담아 오는 것이 방문 목적이기도 했다. 닫혀 있는 쪽문을 살짝 밀고 들어가 도둑고양이처럼 국사전 앞에 서게 되었고, 숨소리도 죽인 채 두 눈에 이 작은 건물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송광사 국사전 앞에서 들었던 생각이 있다면, '작은놈이 참 그럴듯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누군가 달려와 쫓아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서두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국사전을 지나 마음껏 눈요기를 하고 배가 부른 것 같은 착각으로 경내를 서성이다가, 대웅전 옆 약수터에 걸터앉아 바라본 경내는 참으로 편안해 보였다. 현재 조계종 본산 승보사찰인 송광사는 몇 가지 창건 설화가 있으나, 가장 정확한 기록은 창건 이후 고려시대 인종 3년인 1125년에 석조대사가 중창하였고, 이후 500년 동안 폐허로 방치되어 있다가 길상사가 새롭게 중창되고 지눌의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오면서부터, 지눌이 9년 동안 중창 불사를 거치며 면모를 일신하여 오늘날 송광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한다.

물론 이후에도 어려운 일을 여러 번 겪었던 송광사는, 최근에는 1948년 여순사건과 6·25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사찰의 중심부가 불에 탔다. 이후 개보수 및 중창을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하였고, 지금과 같이 한국 불교계에서 아주 중요한 사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자리 잡은 절집들은 대부분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문득 송광사에도 겨울이 되면 눈이 올까, 눈이 오면 어떤 풍경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광사에도 눈이 온다면, 다음에는 꼭 겨울에 다시 한번 찾아오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국보] 송광사 국사전



대중교통으로 송광사가는 길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서울 용산역에서 전라선 KTX를 이용하여 순천역까지 이동하고 순천역에서 버스나 택시로 송광사까지 1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다. 

Getting to Songgwangsa Temple by public transportation:
100, Songgwangsaan-gil, Songgwang-myeon, Suncheon-si, Jeollanam-do, Republic of Korea.
Take the Jeolla Line KTX from Yongsan Station in Seoul to Suncheon Station. From Suncheon Station, you can reach Songgwangsa Temple by bus or taxi in less than one h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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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 [通度寺]

어떤 이는 대한민국 3대 사찰의 하나로 손꼽기도 하고, 어떤 이는 5대 사찰의 하나로 손꼽기도 하는 대가람 통도사는 경상남도 언양과 양산 사이의 영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워낙 유명하고 큰 사찰이라 도통 불교나 절집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한 번은 이름을 들어 보았을 법한 절집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보자면 영축산 통도사는 그야말로 오지 중에 오지에 해당한다. 자가용으로 족히 4~5시간을 운전해야만 올 수 있고, 부산을 거쳐서 오더라도 부산에서 다시 1~2시간을 잡아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어린 시절 부산에서 자라 여러 차례 통도사를 찾은 기억이 있는 터라, 오랜만에 떠나는 통도사 여행은 설렘 그 자체였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5 646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통도사는 이후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전각들이 소실되어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다. 특히 1644년 인조 22년 중창 때 국보 제290호 대웅전을 중건하여 오늘날까지 보존하고 있다. 창건 이후 고려시대에는 왕실의 비호 아래 고려 불교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으며, 억불 정책을 편 조선시대에도 전국 16개 대표 사찰의 하나로 경상남도 대본산의 역할을 했다. 최근에도 대한불교 조계종 9대 월하 대종사를 배출하고, 자장율사의 계율정신을 계승하는 영축총림 대본산 통도사는 지금도 한국불교의 정신적 기반이 되고 있다.

통도사 금강계단 특히 통도사는 삼보사찰 중 불보사찰에 해당하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한 사찰로 더욱 유명하다. 이런 특징을 반영하는 가람 배치와 불교 유적들이 즐비한 절집이다.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신라 때 당나라로 유학 간 자장율사가 643년 당에서 모시고 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3분하여 황룡사탑, 태화사탑, 통도사 금강계단에 안치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래서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 대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의 일종인 금강계단을 배향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가람 배치는 창건 당시 신라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주요 전각들을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배치하고, 산지도 평지도 아닌 구릉 형태로서 불탑과 전각들을 자유롭게 배치한 형태를 갖고 있다. 냇가와 수평으로 난 동선을 따라 일주문과 금강문이 배치되어 있고, 경내에 들어서면 하로전, 중로전, 상로전이 차례로 나타난다. 상로전에는 통도사의 주 불전인 대웅전과 금강계단이 배치되어 있고, 중로전에는 대광명전과 용화전·관음전을, 하로전에는 영산전과 극락보전·약사전을 각각의 구획에 맞게 자연스럽게 흩어 배치하였다.

통도사는 사계절 모두 나름의 멋을 가지고 있다. 일주문에서부터 냇가 양쪽으로 조성된 소나무 숲은 절을 찾는 방문객에게 아주 만족스러운 자연의 모습을 선사한다. 통도사가 창건되던 시기 신라의 수도가 경주였던 것을 감안하면, 통도사는 경주 인근에 위치한 중요 사찰이었을 것이다. 천 년이 지난 지금도 통도사는 그 세를 잃지 않고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특수성 때문일까?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보면 이 정도 규모의 사찰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명승지 요소요소에 자리한 불교 사찰을 떠올리면 항상 손에 꼽힐 정도인 통도사는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 다시 들르고 싶다.




































[국보] 통도사 대웅전



대중교통으로 통도사 가는 길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통도사는 KTX울산역에서 버스나 택시로 1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다.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 양산이 아니고 신평터미널까지 이동하여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30분안에 도착할 수 있다.

Getting to Tongdosa Temple by public transportation:
108, Tongdosa-ro, Habuk-myeon, Yangsan-si, Gyeongsangnam-do, Republic of Korea
From KTX Ulsan Station, you can reach Tongdosa Temple by bus or taxi in less than one hour. If traveling by bus, note that you should go to Sinpyeong Terminal (not Yangsan), from where you can reach the temple by bus or taxi in about 30 min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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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海印寺]

참 인연이 닿지 않는 절집이 해인사인 것 같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몇 손가락에 꼽을 만큼 유명한 사찰이기에 더욱더 찾아보고 싶었던 해인사를 찾을 기회가 없었다. 결국 억지로 대구 출장길에 무리를 해서 다녀간 해인사는 궂은 겨울 날씨 덕분에 완전히 설국이었다. 그때는 그 모습 그대로 환상적인 느낌의 해인사 경내가 참 좋았다. 이런 기억 때문에 아주 환상적인 느낌으로 기억되던 해인사를 다시 찾을 기회가 생겨 정말 많이 기대하며 새벽녘부터 해인사를 찾았다. 그리고 역시! 해인사는 해인사구나 하는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해인사 대웅전 해인사는 신라시대 화엄 10찰의 하나로 창건된 대가람이다. 정확히는 신라 40대 임금 애장왕 3, 서기 802년에 화엄종의 초조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 화상과 그의 제자 이정 화상에 의해 지금의 극락보전 자리에 창건되었다. 이후 천 년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위대한 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조선 태조 2년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이전하여 봉안하게 되어 오늘날 법보사찰이 되었다.

해인사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남도 합천군에 속한다. 그래서 흔히 합천 해인사로 불리고 있다. 누구나 합천이라는 지명과 함께 해인사를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해인사를 가보면 합천보다는 고령군에서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고령에서 합천 해인사까지는 거의 매시간 버스가 오가고 있으며, 고령에서 출발한 버스가 가야를 거쳐 국립공원의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산속 한가운데 조성된 관광단지 상가 앞에 정차한다. 여기서부터 산길을 걷다 보면 해인사 해탈문 앞에 다가서게 되고, 이 해탈문을 통과하면 그때부터 해인사 경내가 펼쳐진다.

해인사 장경각 절집을 다닐 때마다 그 자리 잡은 위치를 관심 있게 보게 되는데, 해인사는 가야산 깊숙한 산자락에 푹 안겨 있는 듯한 형국이다. 그건 아마도 처음 해인사를 찾았을 때 만난 눈 천지의 산사가 뇌리에 각인되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가야산 국립공원 울창한 숲 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해인사의 위치 또한 첫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반인들에게 해인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팔만대장경이다.

해인사 장경각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정신문화유산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귀중한 문화재가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특히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고인 국보 제52호 장경판전은 그 자체로 귀중한 건축문화재로, 임진왜란과 6·25전쟁도 피해간 신비스럽기까지 한 목조건축물이다. 얼핏 보기에는 참 볼품없는 창고 같지만, 조용히 구석구석 둘러보다 보면 정말 오묘한 매력이 풍기는 건물이다.

해인사 장경각 해인사 중수기에 의하면 조선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가 1481년 뜻을 두어 중수 공사를 기획하다가 돌아가셨으며, 이후 인수·인혜 대비가 학조 스님으로 하여금 감독케 하여 성종 19년인 1488년에 경판고 30칸을 다시 지었다 한다. 지금의 수다라장은 1622년에 상량한 기록이, 법보전은 1624년에 상량한 기록이 남아 있어, 이때 두 건물이 다시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인사 대웅전 해인사 하면 우리가 기억하는 스님이 한 분 있다. 조계종의 6대와 7대 종정을 지내고 1993년 자신이 출가한 해인사 퇴설당에서 입적한 성철 스님이다. 우리나라 현대 불교의 큰 어른으로 불교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큰 스님으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간 큰 어른이며 그의 사리가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다.


















































[국보] 해인사 장경각









대중교통으로 해인사 가는 길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해인사는 기차로 이동하기 어렵다. 합천읍내에서도 거리가 멀어 가야산버스터미널까지 버스로 이동하고 여기서 다시 택시를 이용하면 10분안에 갈 수 있다. 서울이나 대구에서 가야산버스터미널까지 직행버스를 이용할수도 있다.

Getting to Haeinsa Temple by public transportation:
122, Haeinsa-gil, Gaya-myeon, Hapcheon-gun, Gyeongsangnam-do, Republic of Korea 
Traveling by train is not convenient. Since the temple is located far from Hapcheon town, it is best to take a bus to the Gayasan Bus Terminal, then take a taxi to Haeinsa Temple—it takes less than 10 minutes by taxi from the terminal. Direct buses to the Gayasan Bus Terminal are also available from Seoul and Dae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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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법주사 [法住寺]

충청북도에는 이렇다 할 고찰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충청북도 보은의 속리산 법주사를 가보면 그런 편견이 한 번에 사라진다. 한국에 남아 있는 천년고찰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법주사 역시 가람 배치부터 남달랐다. 국립공원 속리산 등산로를 따라 계곡을 걷다 보면 계곡 사이에 생각보다 넓은 평지가 나타나고, 그 너른 평지를 공간으로 삼아 가람을 배치하였다. 특히 법주사 뒤편으로 펼쳐지는 속리산의 풍경이 압도적이다.

신라 진흥왕 14(553) 의신 스님이 창건하고, 776년 진표·영신 스님이 중창하였으며, 고려왕조의 비호 아래 8차례의 중수를 거듭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60여 동의 전각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사찰로 발전하였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인조 2(1624) 벽암 스님에 의해 다시 중창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법주사 경내에서 받은 첫 번째 느낌은 장쾌하고 웅장하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법주사 일주문을 지나 처음으로 마주하는 풍광이 속리산을 병풍 삼아 자리 잡은 팔상전과 청동 미륵대불이기 때문이다. 마치 속리산 풍경을 빌려온 듯한 분위기다. 그리고 청동 미륵대불과 팔상전을 지나 마주한 대웅전의 규모 또한 예사 절집에서 보기 어려운, 정면 7·측면 4칸의 2층 팔작지붕 목조건축물이다. 우리나라 절집 중 2층 구조의 전각은 마곡사 대웅전,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 금산사 미륵전 등 총 네 곳으로, 지어진 지 400여 년 된 법주사 대웅전이 그중 하나이다.

속리산 산중의 너른 평지에 산봉우리들을 병풍 삼아 배치된 웅장하고 아름다운 여러 전각들의 모습이 이런 첫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리라 생각해본다. 경내에는 대가람답게 아직도 귀중한 문화재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데, 특히 법주사 팔상전은 국보 제55호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이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지어져 1968년 해체 수리된 아주 중요한 목조건축물로, 건물의 양식은 층마다 조금씩 다른데 1층부터 4층까지는 주심포 양식으로, 5층은 다포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 목탑 중 가장 높은 목조건축물이며, 하나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정말 중요한 문화재가 아닐 수 없다. 언젠가 통일신라시대 대가람 황룡사 9층 목탑에 관한 TV 다큐멘터리에서, 몽골 침입으로 불타버린 황룡사 9층 목탑의 원형을 유추할 자료가 바로 법주사 팔상전이라는 내용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러하기에 더욱 가치가 있는, 한국 건축사의 문화 원형으로서 더없이 소중한 문화재가 법주사 팔상전이다.

이외에도 법주사 경내에는 다양한 목조·석조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다. 팔상전과 대웅전 사이에 작은 규모지만 소박하게 자리 잡은 원통보전 역시 보물급 문화재로, 대웅전과 같은 시기인 인조 2년 벽암이 법주사를 중창할 때 만들어진 목조건축물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많은 절집들은 유교 국가였던 조선왕조를 거치면서 모두 첩첩산중으로 옮겨 가야만 했다. 이런 절집들에 비하면 법주사는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교통편도 좋은 편에 속하는 사찰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찾기에도 편리하고, 우리 문화의 다양성과 우수성을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여행지가 아닐까 한다.



































  [국보] 법주사 팔상전


대중교통으로 법주사 가는 길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법주사는 기차로 이동하기 어렵다. 보은버스터미널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여 1시간 안에 갈수 있고 서울에서 이동하는 경우 속리산 국립공원내에 있는 소리산터미널까지 직행으로 운영하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Getting to Beopjusa Temple by public transportation:
274, Beopjusa-ro, Songnisan-myeon, Boeun-gun, Chungcheongbuk-do, Republic of Korea
Traveling by train is not convenient. From Boeun Bus Terminal, you can reach Beopjusa Temple by bus or taxi in less than one hour. If you are coming from Seoul, there are direct buses available to the Sorisan Terminal, located within Songnisan National Park, near the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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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수덕사 [修德寺]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 건축물로 손에 꼽히는 수덕사 대웅전. 어떤 문화재 전문가는 수덕사에 이 대웅전이 있어 수덕사를 찾는 길이 행복하다 하였다고 쓰기도 하였다. 실제 수덕사를 찾아 대웅전 앞에 서면 정말 웅장한 느낌이 든다. 몇백 년이 지난 현재에도 이런 느낌인데 이 건물을 만들 당시 대웅전의 맞배지붕이 얼마나 거대하고 웅장하게 느껴졌을까?

수덕사 대웅전

수덕사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숭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언제 창건되었는지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백제의 문헌에 나오는 12개 사찰 중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인 것으로 미루어 백제시대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경내에서 출토되는 백제 와당 등 여러 가지 출토 유물로 미루어 보아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 재위 시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해안에 가까운 탓에 이 일대는 여행을 해 보면 높은 산이 별로 없고 대부분의 지형이 나지막한 야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런 곳에 그리 유명한 사찰이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막상 예산 삽교를 지나 덕숭산 아래쪽에 당도하면 제법 산다운 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계곡 초입에 당도해서 상업 지구의 여러 시설물들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여느 명산 고찰과 다름이 없는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주변을 발견할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

사실 수덕사는 대웅전을 제외하면 별로 볼 것이 없는 사찰이다. 최근에 많은 돈을 들여 만들어 놓은 여러 시설물들은 그저 시선을 어지럽힐 뿐 이곳을 찾는 이에게는 그리 탐탁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런 거추장스러운 시설물들을 지나 대웅전 앞마당에 오르면 정면으로 대웅전이 시야에 들어오고, 순간 거추장스러운 잡생각이 싹 가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수덕사 대웅전은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아름다운 곡선이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은 전혀 없는 무뚝뚝한 목조건축물이다. 그런데 그 굵직한 선과 묵직함은 직선들이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듯하여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대웅전은 1940년 중수 당시 대들보에서 나온 묵서명을 통해 고려 충렬왕 34(1308)에 건립된 건물로 밝혀졌으며, 겹처마 맞배지붕에 주심포 형식을 가진 정면 3칸 측면 4칸의 목조 건축물이다.

수덕사 대웅전

그렇게 사찰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기웃기웃하다 보면 이 절집의 위치가 참으로 절묘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어느 절집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수덕사 역시 절경을 자랑한다. 대웅전 뒤편으로는 덕숭산이 병풍처럼 쳐있고, 앞으로는 시원하게 트여 예산 평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 중의 절경이다. 과거에 이런 사찰을 창건한 고승들은 한결같이 이런 풍수를 골라 잡을 수 있는 식견과 학식을 겸비한 전문가들이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멋진 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수덕사를 얘기하면 꼭 빠지지 않는 얘기가 하나 더 있다. 수덕사 경내를 빠져나오다 보면 지금은 새길이 나 있지만 옛길 초입에 위치한 수덕여관과 그에 얽힌 예술가 몇몇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주인공들은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였던 나혜석과 비구니 스님 김일엽, 그리고 몇 해 전 타계한 고암 이응로 화백이다.

수덕사 풍경

특히 나혜석은 여류시인이자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로 당시 도쿄 유학까지 다녀온 보기 드문 재원이었으나, 1934년 이혼 후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출가를 위해 수덕사를 찾았다가 당시 수덕사 조실 만공스님으로부터 거절당한 후 한동안 수덕여관에 머무르며 예술인과 교류하고 집필 활동을 했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렇게 몇 년간 수덕여관에 머물던 나혜석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가 몇 년 후 객사함으로써 그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 시기에 나혜석보다 젊은 고암 이응로가 수덕사를 찾아 나혜석과 교류하게 되었고, 이런 인연으로 고암은 나혜석이 떠난 수덕여관을 매입하여 본 부인 박귀희 여사에게 운영을 맡겼다. 파리 유학과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뒤 말년에 수덕여관에 내려와 기거하며 1988년 작고할 때까지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다. 몇백 년을 아무 말 없이 버텨온 수덕사 대웅전 아래 자리한 수덕여관과 그에 얽혀 있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또 한 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국보] 수덕사 대웅전







































대중교통으로 수덕사 가는 길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길 79
서울 용산역에서 장항선을 이용 천안역을 거쳐 예산역이나 홍성역에 도착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여 1시간 안에 갈 수 있다. 

Getting to Sudeoksa Temple by public transportation:
79, Sudeoksa-gil, Deoksan-myeon, Yesan-gun, Chungcheongnam-do, Republic of Korea
Take the Janghang Line from Yongsan Station in Seoul and travel via Cheonan Station to either Yesan Station or Hongseong Station. From there, you can reach Sudeoksa Temple by bus or taxi in less than one h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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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일 목요일

안동 봉정사 [鳳停寺]

 몇 해 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문화를 알고 싶다며 찾았던 사찰이자, 현존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 자리한 불교 사찰이 안동의 봉정사이다. 대한민국 최고라는 수식어 하나만으로도 누구나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봉정사는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으나,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672) 능인 대덕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여러 차례 중건과 해체 복원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여러 자료에 의해 특히 고려 공민왕 대에 대대적인 개보수와 중창을 거쳤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당시에 만들어진 극락전과 대웅전이 현존하고 있으며, 이 목조건축물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목조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다.

봉정사 극락전

안동은 경상북도의 내륙도시 중 하나이다. 안동시 북서쪽에 자리한 서후면 태장리는 시내버스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로, 구 안동 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봉정사 매표소까지 찾아갈 수 있다. 다른 불교 사찰들이 그러하듯 봉정사도 매표소에서 10여 분의 산길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고찰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소나무 숲을 지나 몇 분 걷다 보면, 오랜 세월 동안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법한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이 공터를 지나 오른쪽 언덕 위로 시선을 옮기면 봉정사 만세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시선을 따라 오른편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만세루 옆으로 봉정사 본당에 오르게 되고, 처음 눈에 들어오는 전각이 봉정사 대웅전이다.

봉정사 대웅전

대웅전을 돌아 안쪽으로 몇 걸음 들어서면, 고금당과 화엄강당 두 전각 사이로 대한민국 최고의 목조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이 자리 잡고 있다. 봉정사 극락전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맞배지붕 형태의 정면 3칸 측면 4칸 전각으로, 공포는 주심포 형식을 갖추고 있다. 구조나 형태도 매우 간결하여 단순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목조건축물이다. 고려 공민왕 12(1363)에 중수한 고려시대의 건물이면서도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간직한 극락전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해체 보존 작업을 거쳐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극락전 좌우에 위치한 고금당과 화엄강당도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수준 높은 목조건축물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봉정사 극락전

어느 사찰에서나 대웅전이 훨씬 주목받기 마련이지만, 정확한 사료도 없고 극락전의 유명세에 가려 잊혔던 봉정사 대웅전은 최근까지만 해도 그저 평범한 조선시대 목조건축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00 2월 지붕 보수공사 과정에서 대웅전의 건축 연대를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묵서가 발견되었고, 현재 학계에서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 중이다. 기존에 알려진 최고의 목조건축물이 봉정사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바뀔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봉정사는 거의 모든 전각이 조선 중기 이전에 만들어진, 그야말로 대한민국 목조건축물의 보고가 되는 셈이다.

봉정사 만세루

이런 역사적 기록을 떠나서도 봉정사는 그 자체의 향기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봉정사 경내를 나와 반대편으로 몇 걸음 옮기면 봉정사 영산암이 따로 떨어져 자리 잡고 있는데, 얼핏 보아도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언덕 위로 계단을 몇 개 오르면 영산암 응진당을 마주하게 된다. 현재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 전각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배용균 감독의 1989년작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불교영화의 촬영지였다고 한다. 영산암을 끝으로 봉정사를 빠져나오며, 일반인에게는 다소 난해한 영화로 기억되는 이 작품의 분위기가 봉정사 영산암의 정취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국보] 봉정사 극락전





























봉정사 인근에서 꼭 봐야할 명소 :  

안동역에서 봉정사는 가까운거리에 있고 인근에 위치한 안동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이 꼭 방문해보아야할 문화유산이다. 첫번째로 안동화회마을은 풍산류씨의 집성촌으로 조선시대 한국 전통가옥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전통마을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두번째로 병산서원은 풍산류씨의 집안 서당으로 만들어져 임진왜란 기간동안 조선을 이끈 명재상 서애 류성룡이 낙향하여 징비록을 집필한 장소로 유명한 장소이다.

Must-Visit Attractions Near Bongjeongsa Temple : 

Bongjeongsa Temple is located a short distance from Andong Station. Nearby, Andong Hahoe Folk Village and Byeongsanseowon Confucian Academy are cultural heritage sites you definitely should visit.

First, Andong Hahoe Folk Village is a traditional village that served as a clan village for the Pungsan Ryu family. It has maintained its traditional Korean houses from the Joseon Dynasty and is an important cultural heritage site listed as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Second, Byeongsanseowon Confucian Academy was originally built as a family school for the Pungsan Ryu clan. It is famous as the place where Seo-ae Ryu Seong-ryong, a renowned prime minister who led Joseon during the Imjin War, retired and wrote the Jingbirok (Book of Corrections).


대중교통으로 봉정사 가는 길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서울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이용하여 안동역까지 이동하고 인동역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여 봉정사까지 1시간 안에 갈 수 있다. 

Getting to Bongjeongsa Temple by public transportation:

222, Bongjeongsa-gil, Seohu-myeon, Andong-si, Gyeongsangbuk-do, Republic of Korea
Take a train from Cheongnyangni Station in Seoul to Andong Station, then travel to Bongjeongsa Temple from Andong Station by bus or taxi— the trip from the station to the temple takes less than one h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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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浮石寺]

부석사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만 들어도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아름다운 불교 사찰이다. 이 아름다운 사찰의 문화재적 가치를 드높이는 목조건축물 무량수전의 오랜 역사적 향기가 아니어도,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부석사는 화엄종의 본찰이다. 신라 문무왕 16(676) 의상대사가 창건하였고,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부석사 무량수전은 여러 가지 수식어가 필요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목조 건축물이다.
















경상북도 영주는 대한민국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한민국의 중요한 핵심 기능이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축에 집중되어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영주는 정말 외진 곳이다. 작심하면 그리 먼 곳도 아니지만 닿기 쉽지 않은 곳이기에,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한 번쯤 경험한 사람에게는 이런 수고가 그리 대단치 않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부석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영주나 풍기까지 가야 하고, 대중교통인 시외버스나 기차를 이용한다면 풍기역이나 영주역까지 도착해야 1시간 내에 접근이 가능하다. 보통 부석사를 찾을 때 영주 시내나 풍기에서 시내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데, 택시로는 시골길이라 막힘 없이 30분 정도를 달리면 부석사 매표소 앞에 도착하게 된다.
















부석사가 자리한 부석면 복지리는 사과로 유서 깊은 곳이다. 가을에 부석사를 찾아보면 주변이 온통 사과나무 천지이다. 지역 농협 현수막에도 지역 사과를 자랑하는 글귀들이 흔하게 눈에 띄고, 부석사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오르다 보면 양쪽 길가에 사과나무가 그득하다. 그렇게 언덕 양편에 사과나무를 품은 채 10여 분을 오르다 보면 숨이 가빠질 무렵 거대한 석벽과 돌계단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부석사 경내이다. 그리 긴 거리는 아니나 제법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다단계 논이나 밭처럼 만들어 놓은 정원을 만나게 되고, 계속해서 눈앞에 안양루가 마주한다. 계단 아래에서 바라본 안양루의 모습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우직하고 단단해 보이는 전각의 느낌이다.




가파른 경사 때문에 안양루 아래를 지나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대한민국 최고의 목조 건축물인 부석사 무량수전과 만나게 된다. 팔작지붕의 아름다운 처마 곡선과 배흘림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한 무량수전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지어진 전각으로, 600년이 넘는 대한민국 고건축물 중 백미로 손꼽히는 부석사의 대표 전각이다. 물론 무량수전이 있어 부석사가 더욱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방문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꼭 이 건물 하나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특히 부석사의 독특한 가람 배치와 많은 예술가들이 극찬하는 무량수전 앞 전경은 정말 감동스러운 풍광을 자랑한다. 무량수전을 등지고 서면 보지 않은 이에게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의 장관이 펼쳐진다. 소백산 능선의 풍광에 저녁노을이 걸칠 때면 더없이 아름다운 광경을 경험할 수 있다. 부석사에는 무량수전 이외에도 중요한 문화재가 하나 더 있다.



무량수전 오른편 언덕으로 산길을 오르다 보면 작고 아담한 전각 하나가 나타나는데, 이 전각이 국보 제19호 부석사 조사당이다. 이전까지는 그 내력을 모르고 그저 사찰의 작은 부속건물로 알고 있었으나, 1916년 해체 수리하면서 이 전각이 고려 우왕 3년에 지어진 건축물임이 밝혀졌다. 때문에 뒤늦게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전각이다. 무량수전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규모도 볼품없으나, 묵서명에 기록된 건립 시기로 보아 무량수전과 같은 세월을 묵묵히 지켜낸 값진 문화재임에는 틀림없다. 이처럼 중요한 문화재를 600년이나 간직하고,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백산의 멋진 풍광을 품은 채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영주 부석사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대한민국의 몇 안 되는 소중한 보물이다. 어느 정도 자라서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견문을 넓히기 시작하는 초등학생들에게 꼭 한 번씩 보여주고 싶은 대한민국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보] 부석사 무량수전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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